들어가며
"SaaS 랜딩페이지 하나 만들어줘."
요즘 이 한 마디면 그럴듯한 페이지가 뚝딱 나옵니다. Lovable, v0, Manus AI, bolt.new — 도구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결과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 똑같습니다.
도구 이름만 다르지, 나오는 페이지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동일합니다. 이 글은 그 현상을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왜 다를 수가 없는지, 그 구조적 이유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예시로 사용하는 스크린샷은 크리에이터 '조쉬(Josh)'가 운영하는 Supernova에서 제공하는 SaaS 템플릿입니다. 하지만 이건 Supernova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AI 빌더를 열어도, 빈 도화지에서 시작하면 거의 이 구조가 나옵니다.
100이면 100, 똑같은 Hero 섹션

페이지 최상단, Hero 섹션. AI가 만드는 SaaS 랜딩페이지의 Hero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구성입니다.
- 상단에 작은 배지 텍스트 ("The #1 ... Platform")
- 크고 굵은 타이틀 카피
- 그 아래 서브 카피 한 줄
- CTA 버튼 두 개 (Primary + Secondary)
- 하단에 소셜 프루프 ("Trusted by 2,000+ companies")
- 왼쪽에는 제품 스크린샷이나 일러스트 에셋
왼쪽 비주얼, 오른쪽 텍스트. 이 배치가 100이면 100 반복됩니다. 왜일까요? 이 레이아웃이 수많은 SaaS 웹사이트에서 "전환율이 검증된 구조"로 사용되어 왔고, 그 페이지들이 그대로 학습 데이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AI 입장에서는 "SaaS 랜딩페이지"라는 프롬프트에 대해 가장 확률 높은 응답을 내놓은 것뿐입니다.
고객 후기는 반드시 카드로

Hero 아래로 스크롤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섹션. 고객 후기(Testimonials)입니다.
구성은 항상 같습니다:
- 3열 카드 그리드
- 각 카드에 별점 5개
- 인용문 형태의 리뷰 텍스트
- 프로필 사진 + 이름 + 직함
- 출처 태그 (Twitter, Product Hunt 등)
캐러셀로 넘기는 후기, 비디오 추천사, 타임라인 형태의 고객 여정 — 실제 웹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하지만 AI에게 시키면 무조건 이 카드 레이아웃이 나옵니다.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를 표현하는 패턴 중 가장 빈번하게 학습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How it Works는 항상 Lucide Icon과 함께

기능 소개 섹션. 이름은 "How it Works"일 수도, "Features"일 수도, "One platform. Every format."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태는 동일합니다.
- 2x2 또는 3열 그리드 카드
- 각 카드 상단에 Lucide 아이콘
- 짧은 제목 + 한두 줄 설명
Lucide까지 같은 이유가 재밌습니다. Lucide는 오픈소스 아이콘 라이브러리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 중 하나이고, 수많은 SaaS 보일러플레이트와 템플릿에 기본 포함되어 있습니다. AI가 학습한 코드베이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아이콘 import가 lucide-react이니, 당연히 생성할 때도 Lucide를 씁니다.
CTA와 Footer, 판에 박힌 마무리

페이지 끝.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환을 유도하는 CTA 섹션과 Footer입니다.
- 풀 와이드 배경색(주로 보라/파랑 계열) 위에 큰 타이틀
- 가운데 정렬된 CTA 버튼 하나
- 그 아래 Footer: 로고 + 설명 / Product / Resources / Legal 4열 구성
이 배치는 마케팅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 그 자체입니다. "페이지를 끝까지 읽은 사용자에게 마지막 전환 기회를 줘라." AI는 이 공식을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매번, 똑같이.
왜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가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Lovable은 Lovable이고, Manus AI는 Manus AI인데, 왜 결과물이 같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같은 모델을 쓰고, 같은 데이터를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AI 빌더는 내부적으로 Claude나 GPT 계열 모델을 사용합니다. 이 모델들이 학습한 웹 데이터에는 이미 수렴된 SaaS 디자인 패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SaaS 랜딩페이지"라는 프롬프트가 들어오면, 모델은 학습 데이터에서 가장 빈도 높은 구조를 조합해 출력합니다.
결국 각 서비스의 차이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UI 포장에 있을 뿐입니다.
- 어떤 서비스는 다크 테마를 기본으로 줍니다.
- 어떤 서비스는 애니메이션을 자동으로 넣어줍니다.
- 어떤 서비스는 Tailwind를, 어떤 서비스는 자체 디자인 시스템을 씁니다.
하지만 섹션 구성과 흐름은 동일합니다. Hero → Features → Testimonials → Pricing → CTA → Footer. 이 순서를 벗어나는 AI 빌더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개발자는 왜 안 쓰게 되는가
이 구조를 이해하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AI가 만든 랜딩페이지를 보면 "아, shadcn/ui에 Lucide 아이콘이고, 섹션 구성은 그 템플릿이구나"라는 게 바로 보입니다. 포장이 아무리 달라도, 안에 있는 건 같은 재료입니다.
그리고 커스터마이징을 시도하는 순간 벽에 부딪힙니다. "이 섹션 순서 바꿔줘", "Hero를 전체화면 비디오로 바꿔줘" 같은 요청은 AI가 잘 처리하지 못합니다. 학습된 패턴에서 벗어나는 순간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니까요.
결국 조금이라도 독특한 페이지를 만들려면 직접 코드를 짜는 게 더 빠릅니다. AI 빌더의 진짜 가치는 "개발을 모르는 사람이 빠르게 MVP를 띄우는 것"에 있지, 개발자의 생산성 도구는 아닌 셈입니다.
마치며
이 글은 AI 랜딩페이지 빌더를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서로 다른 도구가 만든 서로 다른 결과물이 아니라, 같은 모델이 같은 패턴을 재조합한 변주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구는 넘쳐납니다. 하지만 도구가 만들어주는 건 껍데기입니다. 진짜 차별화는 거기 담기는 이야기, 브랜드의 목소리,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 결국 사람이 채워야 하는 것들에서 옵니다.
다 똑같은 SaaS 랜딩페이지 시대, 차별화는 코드가 아니라 콘텐츠에 있습니다.